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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재현의 역사

14세기 말 이후 고려청자는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진 분청사기로 그 전통이 계승되었고, 조선시대 17세기까지 만들어진 백자 태토에 청자유약을 입힌 청자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는 백자라고 하는 세계적인 도자산업의 큰 흐름 속에서 청자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단절되다시피 명맥만을 유지하였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부터 이왕직미술품제작소李王職美術品製作所의 도자부陶磁部와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의 도기과陶器科, 일본인이 운영하는 도자공장 등에 의해 고려청자의 본격적인 재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근대기에는 일본인들의 자본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일본인의 기호에 맞춘 고려청자로 제작되어 우리의 전통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강진군 일대에서는 청자 요지에 대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강진 지역민을 중심으로 청자요지의 중요성과 학술적 가치는 물론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고려청자의 재현에 여론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1977년 본격적인 고려청자의 재현을 위해 ‘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1978년 2월 화목가마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재현청자가 완성됨에 따라 강진에서의 고려청자 재현에 첫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후 시설확충과 함께 수 십 차례에 걸친 시험번조를 통해 청자재현과정에 잘못된 부분을 수정ㆍ보완하였으며, 1981년 11월 시험번조결과를 일반인에게 공개하였고, 1982년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 재현품 전시를 통해 높은 재현 수준을 인정받았습니다.

강진군은 본격적인 고려청자 재현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1986년 ‘고려청자사업소’를 개소하고, 소규모의 전시관과 함께 발굴 조사된 사당리 41호의 보존을 위해 보호각을 설치하였습니다. 고려청자사업소는 고려청자 재현을 위한 시설의 확장과 적극적인 재현기술을 축적한 결과, 고려 중기 생산되었던 빙열氷裂이 없는 유약과 강도를 높이는 번조법燔造法을 자체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2000년대부터 청자재현사업의 규모 증가와 활성화를 위해 강진군에서 연구개발비와 각종 보조금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개인요가 활발히 운영되어 청자 재현사업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며, 단국대학교, 요업기술원, 강진군을 주축으로 청자의 세계화 및 명품화를 위한 공동연구기반구축 사업을 통해 강진 청자의 재현에 밑거름을 마련하였습니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33전화)061-430-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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